11. 탈주 스캔들 (11) - 어지간하면 딴 데 힘 안 쓰려 했는데
흔하고 익숙한 복도식 아파트. 복도 끝에서 세 번째 집으로 들어가면 ‘삼촌’과 둘이 살았던 집이 나온다. 해외 출장이 잦았던 부모님을 대신해 자주 돌봐주셨던 분. 눈앞에 선명하게 시큰대는 한 사람을 떠올리던 인하의 눈가가 찡그려졌다. - 형사 일을 하겠다고? - 네, 이미 발령났어요. - 뭐라고? 진로를 결정한 뒤 말을 전하자 혀를 내두르는
흔하고 익숙한 복도식 아파트. 복도 끝에서 세 번째 집으로 들어가면 ‘삼촌’과 둘이 살았던 집이 나온다. 해외 출장이 잦았던 부모님을 대신해 자주 돌봐주셨던 분. 눈앞에 선명하게 시큰대는 한 사람을 떠올리던 인하의 눈가가 찡그려졌다. - 형사 일을 하겠다고? - 네, 이미 발령났어요. - 뭐라고? 진로를 결정한 뒤 말을 전하자 혀를 내두르는
뜨개질을 취미라고 말할 수 있을 때쯤, 원칙을 하나 세웠다. 사용(使用)하지 않을 거면 뜨지 않는다. 실질적인 용도가 없으면 뜨지 않겠다는 말이다. 당연한 명제 같은데도 지키기 어렵다. 뜨개 웹사이트는 신상 실과 도안을 수시로 내놓고, 유튜브 알고리즘은 유행하는 ‘토마토 가방’ 도안으로 나를 안내한다. 하지만 내 옷걸이에는 이미 형형색색의 뜨개 가방이 걸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인터뷰이가 고통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 스물다섯 살 난 아들을 의료사고로 잃은 어머니가 아들의 사고 현장이 담긴 CCTV 영상을 한 프레임씩 돌려 보면서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했다. 뻔한 문장을 기사에 담기 위해서 나는 기어이 그 질문을 뱉었다. 예상했던 답변이 한숨을 통과해 나오자 나는 안도감과 동시에 자괴감을 느꼈다.
울음을 삼킨 채 떨리는 입술을 깨문다. 소리치고 싶지만, 입안을 맴도는 말을 삼킨다. 몇 번이고 꺼냈던 말은 끝내 닿지 못하고 다시 내 안으로 돌아온다. 그럴 땐 마음을 잠시 쉬게 할 나만의 피서지를 떠올린다. 따스한 햇볕 아래 눈을 감고 시원한 물결 속으로 발끝을 내밀어 귓가를 간지럽히는 바람 소리 발가락 사이를 살랑대는 물살
예쁜 유리잔 속에 잘 영근 달 하나 담가 컴퓨터 앞에 놓아두고 . . . 아무 말도 고이지 않은 맑은 수면 . . . 키보드 위에 가지런히 모아놓은 손가락들 꼼지락꼼지락 눈치만 보다 슬그머니 거리를 넓힌 검지 끝에 시작되는 세상 구경 부업삼아 회사 차려 폐업까지 시켜보고 갈 길 잃은 내 마음 심리 파악 완료 주인 찾은 강아지 소식에
연필은 모두 옷을 입고 태어난다. 나무라는 옷이다. 그러나 그라프스톤은 태초의 아담처럼 처음부터 발가벗고 세상에 나왔다.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숨기지 않은 채. 나는 진한 농도의 연필을 좋아한다. 연필이나 샤프심을 살 때 항상 2B를 사곤 했는데 좋아하는 연필가게에서 6B연필을 발견했다. 여기서 B는 Black. 앞에 붙은 숫자가 클수록 흑색이 짙고 그만큼 무르다.
여름은 기온만 오르는 계절이 아니다. 몸은 햇볕을 받아 뜨거워진다. 마음은 흘려보내던 한마디에도 들끓는다. "네가 뭘 알아?" "너는 몰라도 돼."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네 생각이 궁금해." 같은 입에서 나온 말이라도 온도는 전혀 다르다. 갑자기 내리꽂히는 소나기처럼 감정의 물살에 휩쓸렸다. 달아오르는 것은 살갗만이
연일 뜨거운 날씨가 계속됩니다. 아무리 한여름이라지만, 새벽과 저녁의 공기까지 침범한 열기는 심상치 않습니다. 이럴 때 길가에서 만나는 나무 그늘은 생존을 위한 적당한 쉼터가 되어줍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피할 수 있는 나무 밑이 사라져갑니다. 가게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로, 낙과가 바닥을 더럽힌다는 이유로, 편의에 방해가 된다는 온갖 이유를 붙여 우리보다 오래 살아온 나무가
[특별편 - 정신건강 이야기] 학생 의뢰서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충동적인 행동으로 인해 대인관계 갈등이 잦으며, 반복적인 과제 미제출로 인한 학습의 어려움” 그런데 담임선생님은 의뢰서를 건네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애가 정말 밝고, 장점도 많아요.” 문제 행동으로 의뢰되지만, 막상 만나보면 에너지가 크고 매력이 있는 아이들. 바로 ADHD 청소년들이다. ADHD 청소년들은 학교와
근데 네 발은 왜 그렇게 깨끗하고 예뻐? 옛날 드라마 대사가 한동안 밈(meme)이었다. 발레하는 동생의 위선을 꼬집은 언니를 누가 더 똑같이 따라 하는지 보며 깔깔 웃었다. 한편, 내 기억 하나와 연결되어 억울한 감정이 일순 치솟곤 했다. 겉으로 깨끗한 발도 고통스러울 수 있다고. 국토대장정에 참가했을 때 내 발은 끝까지 깨끗했다.
우주선 발사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인간은 요단강을 건널때 가장 귀한 기억이 재생된다고 했다. 미나는 우주선 발사할 때마다 그랬다. 이번 영상의 주인공도 규리였다. 이륙 직전 규리와의 통화에서 대답도 없이 악을 쓰며 우는 규리에게 미나는 화를 냈다. - 엄마, 목소리 지금밖에 못 듣는데 계속 울기만 할 거야? 규리야! 규리야. 엄마 규리한테 할 말
(*BGM) 안녕하세요, GTV 라이브 쇼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은 <탈주 스캔들>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우리의 주인공, 주인하 씨를 자리에 모셨습니다. 반갑습니다, 인하 씨! “아, 안녕하세요, 주인하입니다. 반갑습니다.” (인하가 마이크에 대고 인사를 하자마자 박수 소리가 세트장을 울린다. 어색한지 인하는 입매를 당겨서 웃는다. 무릎 위에 손을 올리고 소파에 앉아 셔츠 소매